Prolog

폴   좋아. 잘들어라. (카메라는 천천히 폴의 얼굴로 다가가서 클로즈업까지 들어간다) 25년쯤 전에 한 젊은이가 혼자 알프스로 스키를 타러 갔어. 그런데 눈사태가 일어나서 눈이 그를 삼켜 버렸고, 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어.


라시드   (소리) 끝이에요?


폴   아니, 끝이 아니야. 시작이지.(사이) 그때 그의 아들은 어린 소년이었는데, 세월이 흘러서 그 아들은 어른이 됐고 역시 스키를 타게 됐어. 지난 겨울 어느 날, 그는 혼자서 스키를 타고 산 밑을 향해 반쯤 내려오고 있었지. 그러다가 점심을 먹으려고 큰 바위 옆에서 멈췄어. 막 치즈 샌드위치를 꺼내 먹고,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는 얼음에 묻힌 얼어붙은 시체를 발견했지. 바로 자기 발밑에서 말이야. 그는 자세히 보려고 허리를 굽혔지. 그런데 갑자기 그는 거울을 보는 것 같았어. 자기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단 말이야. 거기에는 자신이 있었어. 죽은 채로. 그리고 그 시체는 전혀 손상되지 않았어. 얼음에 갇혀서 그렇게 된거지. 마치 누군가가 산 채로 저장돼 있는 것 같았어. 그는 엎드려서 죽은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나서 자신이 아버지를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지.


라시드의 얼굴. 그는 열심히 듣고 있다.


폴   (계속. 소리) 그런데 이상한 건, 아버지가 자기보다 훨씬 젊다는 거야. 그 소년은 어른이 된거지, 그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를 먹었던 거야.



. . .  폴 오스터Paul Benjamin Auster 「스모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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