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그림 판매에 대하여..

미술이 소비사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일부에게 소비됨을 선택했다면, 다수에게 소비되기 위해 자신의 가치를 낮추어야 하는지 반문해 봅니다.


<낮추다>란 단어는 일반적으로 <일정한 기준이나 정도에 미치지 못하게 하다>란 의미로 사용되지만, 주어가 <사람>일 경우 <내세우지 않고 남에게 겸손하게 대하다>라는 뜻과 <남에게 하대下待(아래하:대접할대)하여 쓰다>라는 뜻을 품습니다. 비슷한 듯한 이 두 가지의 뜻은, 주어인 <사람>이 <갑>과 <을>로 나뉘어 서로를 향한 행동에 따라 상반된 의미의 보이게 됩니다. 겸손하기 위해 자신을 하대하는 방법만이 존재하진 않을 것이며, 권위權威(권세권:위엄위)를 위해 남을 하대하는 방법만이 존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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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ing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 판단 기준으로 경제성(최소 비용, 최대 효과)이 가장 중요시됨을 의심하는 이는 드물 겁니다. 좋은 제품의 가격을 낮춤으로 소비를 높이는 방법은 매우 간단한 방법이지만, 그것이 주는 부작용 또한 매우 큽니다. 대량 생산과 대량 유통이 가능한 이에게 최저 마진margin은 대량소비를 유도하여 이윤을 창출하는 방법이 되겠지만, 소량 생산과 소량 유통을 하는 이들에겐 그와 같은 방법으로 이윤을 창출하기란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지금 한국의 생산자가 판매 증진을 위해 가장 쉽게 선택하는 방법은, 자신의 노동력을 낮게 평가해 제품의 가격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상점의 임대료가 사람의 임금보다 높은 상황에 부조리함을 느끼지만, 그 이유를 분석하고 개선의 방법을 제시하기엔 개인이 짊어진 생활의 무게가 그것을 인정하고 살아가게 합니다.

이러한 낮춤은 ‘겸손’ 보다 ‘하대’에 가깝습니다. 자신을 ‘하대’해서 표현되는 ‘겸손’은 현대 사회에서 ‘영업營業(경영할영:생계업)’에 가깝습니다. 남을 높이는 것, 남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자신 또한 높아지고 존중되는 것 또한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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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wing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생산자입니다.

한국이란 사회에서 그림 그리는 이들의 노동력 대우는 일부 유명 작가를 제외하면 매우 낮거나 유통조차 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값싼 노동력이 반영된 값싼 그림이 소비 증가에 반영되는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예술품이란 벽이 한국의 소비자에게 그림에 녹아있는 노동력에 대해 사고하기 힘들게 하며, 그림 그리는 이 스스로도 노동자 이전에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사회에 구성되길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이는 분명 노동자이며, 각자 짊어진 생활의 무게가 있습니다. 이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인식해야 할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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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ying

또한 한국을 살아가는 대중이, 가격의 높고 낮음을 떠나 그림을 구매하기란 일종의 결단이 필요할 만큼,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림을 생산하는 이는 하나의 제품처럼 대학에서 매해 끊임없이 생산되지만, 그림을 소비하는 문화는 일부 특권층의 재산 관리의 영역으로 여겨지며, 그림은 집을 나서 특정한 공간에서 감상해야 하는 이벤트가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물론 소비란 것이 소유한다는 것과 동일하진 않습니다. 허나 소유의 제한은 자칫 금욕이 되기 쉽습니다. 특별하게 진열된 고가의 고급 와인과 가격 행사 중인 저렴한 와인 모두 식사를 즐겁게 해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와인 없이도 식사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와인에 관심이 있다면, 와인을 구경하고 제품의 정보를 찾아보는 것보다, 마셔 보는 편이 더욱 와인을 즐기게 해줌에 의심의 여지는 없습니다.

‘식사합시다.’와 ‘그림 봅시다.’라는 말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매번 산해진미로 식사하지 않듯이, 백반집에서 가볍게 식사하듯 그림 또한 섭취되어야 할 것입니다.



판매한 roll 이미지



지난 가을 13일간 운영된 ‘동전 가게 1호점’에서 판매한 롤roll지에 프린팅된 동전 그림의 가격은 개당 1만원 이었으며, 13일간 총 32장이 판매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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