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Real은 부재(不在) 될 수 있지만 제거되지 않는다.


   디지털 & 대면



환경이 변하면 그것에 적응하는 것과 지배받는 것이 동시에 발생한다. 시장의 원리와 금융 시스템을 기반으로 자신의 경계면을 끊임없이 확장시켜가는 자본주의는 인류와 함께 발생한 듯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의 일부처럼 당연히 존재하고 있다. 이 당연함을 즐기고 지속하려는 집단과 그것에 불편을 느끼는 집단 간의 이야기는 그것의 진지함에도 불구하고 주말 연속극의 두 경쟁자처럼 대중에게 가십gossip거리가 되고 있다.

이런 가십 거리의 소재 중 하나가 디지털이 만들어낸 사이버cyber 세계다. 사회의 작동 방식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던 초기 그에 대한 의구심은 이제 디지털에 대한 환호 속에 모두 사라진 듯하지만, 허상Simulacre이란 개념의 논의와 함께 종종 수면 위로 올라온다.


Jean Baudrillard 「Simulacres et Simulation, 1981」 ◀︎ / 디즈니랜드 ▲ / Wachowski Brothers 「The Matrix, 1995」 ►


수치상으론 대부분 사람이 보았을 것 같은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설명하면서 다수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Simulacres et Simulation’을 인용한다. 그의 책은 ‘현대는 시뮬라크르의 시대이며, 모든 것이 시뮬라크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시뮬라크르를 만든다. 미국은 그 자신이 디즈니랜드임을 감추기 위해 디즈니랜드를 만들었다.’는 유명한 통찰을 보여준다. 미국이 만들어낸 또 다른 버전의 디즈니랜드로 할리우드가 있다. 그곳의 재간꾼 감독이 빨강과 파란색 알약을 준비한 후 ‘나는 진실만을 제안한다.’라고 말한다. 적당한 진지함과 치밀한 오락성으로 포장된 영화는 ‘보드리야르’에게 존경을 표한 듯, 혹은 조소嘲笑(조롱할조:웃을소)를 보내듯 모호함을 만들어, 보드리야르의 냉소冷笑(찰랭:웃을소)를 상업적으로 활용한다.


집요한 냉소로 나의 눈을 가리고 있던 무언가를 인식하고 그것을 제거했을 때, 그 현실이 낯설고 더없이 냉혹하다 하여 그 현실을 극복해 줄 누군가를 기다린다면, 그건 단지 그를 볼 수 있는 눈을 뜬 것에 불과하다. 혹은 모든 것이 그저 거짓일 뿐이며 그 거짓이 곧 현실이라고 규정짓는다면, 희망과 거짓의 버무림으로 자신을 살찌우는 이들이 말하는 궁색한 생명 중시 이론에 명분을 선사하는 양분이 되고 만다. 모든 걸 부정으로 밀고 가는 냉소주의冷笑主義는, 모든 걸 긍정으로 밀고 가는 무지無知의 다른 버전일 뿐이며 그 둘 모두에게 ‘나의 시선’은 허락되지 않는다.


치밀한 이해관계로 조직된 새로운 환경은 긴 겨울 끝에 찾아오는 따사로운 봄 햇살처럼 희망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희망이 그려주는 ‘아름다움’… 아이에게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라라며 아름다운 것만을 보게 한 부모에게, 아름다운 어른이 된 아이가 어느 날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자신을 부정한다며 섭섭해할 것인가? 혹은 희망은 허상이라며 삶의 의지까지 죽음의 의지에 양보하는 종말론으로 아이를 인도할 것인가?

허무주의虛無主義(Nihilism)와 냉소주의冷笑主義는 구분되어야 한다. 특별함과 사소함을 모두 부질없음으로 밀고 가는 냉소가, 그 냉소의 끝자락에 미지근한 차 한잔도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아무리 치밀하고 단단하다 해도 그건 그저 비난에 불과하다. 비난은 단어 몇 개의 조합으로 조작된 긍정의 명분을 만든다.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 그들에게 협력을 제공하는 조력자 중 하나가 되어 그들이 만든 희망의 나라로 다른 이를 인도하는 것이다.



‘나의 시선’을 호도糊塗(얼버무려 넘김으로써 속이거나 감추다) 하는 장치는 곳곳에 존재 하며, 사이버 세상에선 그 치밀함이 돋보인다. 인터넷 포탈 사이트의 검색창은 그 창밖의 내용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고 표방하지만, 그것이 검색 기능과 함께 검열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음은 너무도 자명하다. 하나의 검색어가 각 서비스(구글, 네이버, 다음, 빙 등등)의 광고정책에 따라 다른 결과물을 보여주며, 특히 한국의 포탈들은 검색의 기능보다 자신들의 편집 기준에 따른 내용을 보여주는 잡지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어 보인다.


Antonio Negri & Michael Hardt 「Empire(제국), 2000」 ◀︎ / Nick Dyer-Witheford 「Cyber-Marx(제국), 1999」 ►


자본주의가 팽창하듯, 사이버 공간은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 새로운 환경의 작동으로 결정되는 것들에 대해, 흐림 없는 나의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것, 나의 입장을 취하는 것, 그들의 거대한 대지에 작지만 나의 발자국을 만드는 것은 생명인 나의 오랜 습성習性(익힐습:성품성)이다. 습성은 다짐하는 것이 아니라 발현發現(필발:나타날현)하는 것이다. 사이버 공간은 거대한 장벽이지만 통로로서의 가능성이 내재 되어 있음을 상기reminding해야 한다.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는 ‘사이버 시스템’이 자본주의에 의한 전 세계 관리 방식이지만, 동시에 그것의 인프라infrastructure를 이용해 그들이 예상치 못한 저항의 방식이 만들어지는 공간임을 강조한다.) 이제 어머니가 차려주신 건강 식단 이외에, 친구와 싸구려 안주에 소주도 마시고, 애인과 고급 레스토랑에서 와인도 즐길 때가 된 것이다.


세상이 거짓과 속임수의 시뮬라크르의 시대라며 비참해하거나, 지금 현재 자신의 의지를 함께할 이가 보이지 않는다며 좌절할 필요는 없다. 설사 그것만이 현실이라 해도 그 거짓과 속임수도 나를 대면케 하며, 또 다른 누군가가 ‘나의 시선’이 주는 냉혹하지만 벅찬 감동으로 나를 바라봐줄 것이기 때문이다.


‘Real은 부재不在 될 수 있지만 제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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