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기계를 빚어 디지털(Digital)을 불어넣다.


   디지털 & 대면



3차원 인간뇌 모형, 2013 (McConnell Brain Imaging Centre) ◀︎ / 뇌신경섬유지도, 2012 (Schneider Laboratory) ▲ / 뇌 기능별 분석표, 2012 (Allen Institute for Brain Science)


생물처럼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21세기의 대도시 관리를 위해, 도시의 창조자 인간은 그것의 구조를 집약적으로 도식화한 지도를 제작하고 활용한다. 이러한 정보의 수집과 지도의 제작은 뇌를 연구하는 과학에도 활용되며, 대도시 지도에 버금가는 정교한 ‘뇌지도BrainMap’를 그려내고 있다.


Claude Monet 「Impression, soleil levant, 1872」 ◀︎ / Henri-Louis Bergson (1859-1941) ▲ / 베르그송 「Le rire. Essai sur la signification du comique(물질과 기억), 1900」 ►


뇌의 각 부분이 저마다 특수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의 수준이며, 도시의 각 기관이 자신의 역할 수행을 위해 다수의 기관과 긴밀하게 공조하는 것처럼, 뇌 또한 각 기관의 긴밀한 공조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는 그리 낯설지 않다. 멀리서 보면 정지된 듯 보이는 도시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자신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러한 운동성은 뇌에도 적용되며 생명 유지와 지각 과정을 위해 뇌의 기관들은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미시微視(작을미:볼시)적인 운동을 한다. 지각의 요소인 ‘이미지( ≒ 인상)’ 또한 매시간 자신의 인상( ≒ 이미지)’을 남기며 흐른다는 관점에서 운동하고 있다. 무언가를 예상한다는 것은 흐름으로 존재하는 이미지를 신체가 어떠한 선별 기준으로 마름질할 것인지 다양한 경우를 대입한 후 운동하는 이미지를 일정한 조각으로 분절分節(나눌분:마디절)하여 표현한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파리에서 모네의 ‘해돋이 인상’이 발표된 24년 후, 이미지, 몸, 마음을 설명한 베르그손Henri-Louis Bergson의 「물질과 기억」이 출판 된다. 그는 ‘뇌는 운동기관이며, 뇌의 운동성이 고려되어야 심리현상의 이해가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인간은 뇌를 탐구하는 동시에 도시를 건설하듯 기계들의 조합으로 뇌를 만들고 있다. 인간을 닮으려는 기계에게, 창조자 인간은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미래를 예측하라는 임무를 부여한다. IBM은 자신이 보기에 흡족한 기계를 빚은 후 체스 게임에 특화된 시스템을 불어넣는다. IBM은 그를 ‘딥 블루Deep Blue’라 칭하고, 그에게 12수 앞을 예측하라 명한다. ‘딥 블루’는 세계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Га́рри Ки́мович Каспа́ров’에게 1996년 2월 10일 첫승을 거두고, 97년 5월 11일까지 진행된 총 6번의 대국에서 3.5 vs 2.5로 승리해, 시간제한이 있는 정식 체스 토너먼트에서 세계 챔피언을 꺾은 최초의 컴퓨터가 된다.


‘카스파로프’와 ‘딥 블루’의 체스 경기의 관중들 ◀︎ / Stanley Kubrick 「2001: A Space Odyssey, 1968」 ▲ / くさま やよい 「Yayoi Kusama Pumpkin Chess, 2003」►


지금 ‘슈퍼 컴퓨터’와 ‘세계 체스 챔피언’이 체스를 두는 장면이 web을 통해 생중계 중이다. 컴퓨터인 ‘딥 블루’는 ‘가상假想(거짓가:생각상)’이고 인간인 ‘카스파로프’는 ‘리얼real’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혹은 가상과 리얼의 경기이니 ‘반半(half)가상 혹은 ‘半리얼’ 이므로 그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만이 ‘리얼’이다 말할 수 있는가? 컴퓨터가 아닌 인간 챔피언과 인간 도전자가 web이 아닌 현실 공간에서 실제 체스 말과 판을 이용해 경기하고 있으면 ‘리얼’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순수한 체스 경기를 넘어 오락, 학문, 경제, 정치 등의 수많은 이해관계를 포함하기에 그저 ‘기호’들의 놀이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과거 팝 아티스트들처럼 체스의 말을 캔버스에 옮겨 기호성을 제거함으로 ‘이것이 리얼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리얼은 대면對面(대할대:낯면)의 순간 발현되고 대면은 행동을 요구한다. 즉, 리얼의 시작점은 운동의 시작점과 이어진다.”

체스 말과 체스 판이 대면하고 ‘컴퓨터딥 블루’와 ‘인간카스파로프’이 치열한 경기를 통해 대면하고 있으니 ‘이것이 리얼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질matter의 리얼은 논의의 장에서 끊임없이 등장하겠지만 다양한 배치에도 불구하고 내용의 동어반복이란 측면에서 진부한 것이 사실이다.)

리얼은 매 순간 발현하지만 흐름으로 존재할 뿐 멈춰 서지 않는다. 대면은 늘 요구된다는 점에서 존재하지만 언제, 얼만큼이라고 물리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 고민의 과정에 온몸(뇌, 감각기관, 신체 …)이 사용된다는 점에서 행동처럼 고민도 운동의 작용이다. 이제 행동의 범위를 눈에 보이는 움직임만으로 규정짓는 것은 소박한 생각이며, ‘리얼’이라 느낀 순간을 더 이상 표현 불가능할 때까지 세밀히 나누어 ‘이 지점부터 이 지점까지가 대면의 순간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소박하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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